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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철학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카뮈를 곁들이다.

by Danni_0130 2023. 9. 3.

 카뮈에게 있어서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 의무는 절대적이지 않다.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른 개개인에게 있어서 도덕적 판단의 근거는 절대적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대지는 잿빛이고 행위를 하는 인간들은 정말 자유롭다. 행위에 색을 칠하는 것은 인간들이고 우리는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카뮈가 주장한 것은 바로 색안경을 벗자는 것. 잿빛의 대지 속 자유를 온몸으로 느껴보자는 것.

그의 생각을 팽창해보면 극단적 악의 행위에 해당하는 살인까지 옹호될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카뮈는 타인 역시 자유를 느낄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나의 자유를 행함과 타인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중용의 자세가 핵심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자유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포스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지진으로 멸망한 서울 속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의 주민과 외부인의 갈등, 황궁 아파트 주민 간 갈등을 그린 영화이다. 본래 황궁 아파트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사회가 붕괴하고 생존자들이 본인들 아파트에 찾아오자 이들을 경계한다. 시스템이 붕괴되어 부동산 소유의 법적 효력 역시 붕괴된 상태일 것인데, 주민들은 부동산 소유의 개념을 부활시켜 이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게 된다. 자신들의 터전, 집은 원래부터 황궁 아파트였고 외부인들을 쫓아버리기에 이른다. 추운 겨울날이었고 이들은 이 행동의 결과는 외부인들의 죽음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 사실에 집중하지 않았다. 부동산 소유의 개념만을 바라보고 아파트 주민이 아니면 나가야 한다는 원칙만을 바라본 것이다.

 여기서 유명한 공리주의와 관련된 이야기가 떠오른다. 멈출 수 없는 기차 앞에 두 갈래길이 있는데, 왼쪽길로 가면 10명이 죽고 오른쪽으로 가면 1명이 죽는 상황에서 기관사의 결정과 관련된 내용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기관사는 누군가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책임을 져야 한다. 카뮈의 관점에 있어서 기관사는 자신의 도덕적 신념과 판단에 근거에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상황은 다르다. 외부인을 받아들이는 여부가 주민과 외부인 두 집단 중 한 집단이 무조건 소멸된다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부인을 충분히 존중하고 그들과의 존속을 도모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외부인을 쫓아버린 것이다.

카뮈의 관점에서 외부인을 쫓은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도덕적 판단과 합리적 판단의 균형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마지막에 외부인들이 결국 황궁아파트를 무기와 함께 쳐들어오고 황궁아파트는 지옥으로 빠지게 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또 다른 딜레마인 주민대표으로서 강경한 결정력으로 주민들을 결집시켜 황궁아파트의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한 영탁의 정체이다. 그는 사실 황궁 아파트의 주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 주민들은 그를 선망하고 존경하는 대신, 그를 외부인으로 판단하고 처치하였다. 훌륭한 리더로서 황궁 아파트 주민들의 삶을 보장한 그이지만, 주민들의 결집의 중심인 원칙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그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집단의 원칙을 어긴 리더이지만, 리더로서 훌륭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 그를 리더로서 존중하는 것이 맞는가?

여기서 집단의 원칙을 어긴다는 것이 절대적인 악행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 카뮈의 의견이다. 그가 집단의 원칙을 어긴 것이 사실이더라도 영탁이 타인을 존중하고 도덕적으로 대했다면 그 역시 존중받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만 영탁은 황궁 아파트 속 숨은 외부인과 외부인을 숨겨 준 주민들을 억압적으로 대하면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였다. 그렇기에 그가 정말 훌륭한 리더인지는 의견이 다분할 것이고 그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선 그의 책임이었다는 것을 말할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였다. 외부인을 쫓아낸 주민들도 이해가 갔고, 외부인을 수용하자는 주민들도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뮈의 사상을 통해 영화를 다시 곱씹어 보니 생각이 명쾌해졌다. 우선 내가 자유로운 만큼 타인도 자유롭기에. 외부인을 수용하면서 그들과의 공존을 택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음을 생각하였다. 도덕적인 판단과 합리적 판단의 중심에 서서 생각을 해야 하기에 애초에 도덕적 판단이 들어가지 않는 외부인을 쫓아낸다는 결정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영탁의 죽음에 대한 생각 또한 명쾌해졌다. 그가 훌륭하고 합리적인 리더였고 그의 죽음이 안타깝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는 외부인을 경멸했고 외부인을 숨겨준 주민 또한 모욕을 주었다. 그는 결국 도덕적으로 훌륭한 리더가 아니었고 그의 죽음 역시 그의 책임일 것이다. 그가 죽었다고 해도 합리적인 결정은 얼마든지 내려질 수 있으며 황궁아파트는 도덕적인 책임을 이제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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