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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각들 모음

불교와 현대철학에 관하여

by Danni_0130 2023. 9. 3.

과거 서구 문명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신은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대부분의 생각과 행동은 신앙심과 깊게 관련되어 있었고 이는 곧 사람들에게 있어서 신은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이 세태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 한 철학자가 있었으니 바로 니체이다. 그는 신과 천국이라는 초월적 존재를 동경하고 이를 삶의 동기로 삼아 살하가는 살아가는 것은 무의미하고 보았다. 내가 살아가는 곳은 신과 천국이 있는 곳이 아닌 아무것도 아닌 잿빛 대지 위이기 때문이다. 신과 천국을 위해 현재의 삶에서 욕구를 통제하고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은 허무한 것이라 그는 주장한다. 대신 니체는 초월적 존재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닌 바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쟃빛 대지위에서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랬던 그의 어록중에 굉장히 흥미로운 말이 있다. 

 

"나는 유럽의 붓다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인도의 붓다와는 대척점에 있을 것이다."

 

교회를 허물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이가 왜 불교를 지지하였고, 그자 추구하는 붓다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생니다. 본격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 불교 사상부터 전반적으로 살펴보자. 

 

불교라는 종교를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초월적 존재가 초월적 힘을 통해 개인과 세상을 구원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불교에서 신성시 되는 부처 역시 초월적 존재가 아닌 감각에 몰두하는 자신을 완전히 인지할 수 있는 상태, 즉 열반에 이른 상태에 도달한 사람을 말한다. 한 일화를 살펴보자.

 

자신의 아들이 죽어가는 것을보고 여러 방법을 찾던 여인이 부처를 찾아가게 된다. 

여인은 부처에게 자신의 아이를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부처는

'이 마을의 한 집에서 겨자씨를 빌려와라. 다만 죽음을 겪지않은 집이여야한다.'라고 말한다. 

여인은 희망을 가지고 죽음을 겪지 않은 집에서 겨자씨를 빌리려 하였다. 

그러나 겨자씨를 가진 집은 많았지만, 죽음을 겪지 않은 집은 단 한곳도 없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고 그녀가 다시 부처를 찾아갔을 땐, 그녀는 고통에서 해방되어 있었다. 

 

처음 여인에게 있어서 겨자씨는 초월적 힘을 가진 존재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마치 성경의 예수가 죽은 지 사흘이 지난 사람을 부활시킨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부처는 그녀가 알길 원했다. 초월적이고 영원한 힘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위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니체의 사상과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영원불멸, 초월적 힘에 의존하지 ㅇ낳고 현재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고통을 극복하는 자세가 참된 자세임을 니체와 불교 둘다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니체는 인도의 붓다, 즉 불교의 근원이라 부를 수 있는 자를 비판적으로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우선 부처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지 않았다. 제자들에게 구전의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였다. 그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온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개개인의 수준에 맞게 세상의 이치를 전하였는데 학자에겐 현학적인 표현을, 아이들에겐 비유와 상징의 표현을 사용하였다. 같은 내용이 다른 말로 전파가 된것이 니체의 오해의 시발점이었다. 

 

부처는 '니르바나', 즉 열반에 이른 상태를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열반을 '존재의 소멸'과 '최고의 행복'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서 니체는 부처가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상태를 '존재의 소멸'이라 보았던 점에서 자신과 차이가 있다고 한 것이다. 열반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비롯한 자기 주변의 존재들을 소멸시킨다는 것은 앞서 니체가 자신이 부정했던 초월적 상태의 진입을 위한 희생과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부처가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상태는 후자의 경우이다. 열반, 즉 감각에 몰입하는 자신을 인지하는 상태가 되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連棋)의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며 이는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 하였다. 결국 부처가 언급했던 '존재의 소멸'은 '최고의 행복'을 위한 하나의 과정에 불과한 것이므로 결국 니체와 부처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필자는 불교에 대해 깊게 알지 못한다. 현재 불경을 읽고 있는 중이며 깊은 이해가 된 상태에서 이 글을 다시 한번 더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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